Cape Breton Island 에서 드리는
이달의 편지
케이프 브레튼 선교지에서 드리는
1월의 편지
하나님의 은혜로 2024년 12월 선교도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다. 특별하게 큰일은 없었지만, 원주민들과 함께 ‘일대일 성경공부 및 전도도서 만들기’, ‘원주민 가정 심방’, 그리고 ‘성탄절 선물 나누기’ 등을 하며 은혜로운 12월을 보냈습니다.
벌써 2024년 한 해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2025년의 새해를 맞이합니다. 12월이 되면 늘 인생의 마지막 때를 묵상하게 됩니다. 12월이 되면 ‘벌써 한 해가 다 지났구나. 한 해 동안 나는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 아니면 아무 열매 없는 한 해를 살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해에도 같은 생각이 들었고, 제 생각에는 내년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때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벌써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났구나.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 아니면 아무 열매 없는 삶을 살았는가?’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법’을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 7:17~19)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눅 13:7~9)
사실, 많은 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근거로, 자신의 열매 없는 삶에 대하여 ‘그래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가지, 행위로 구원 받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순종하는 삶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구원과는 상관 없는 일’로 가볍게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건강하지 않은 믿음이며, 지헤롭지도 않은 일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찰스 스펄전과 같은 명설교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조셉 얼라인’ 목사님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고, 앞날을 예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성이 있는 사람답게 이성이 우리를 이기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를 만드신 분을 무시하거나,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와 다르게 살거나, 그분의 뜻에 반항하며 산다면 이것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요? 질그릇이 토기장이와 싸우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요? 무모하게 불속으로 뛰어드는 일, 뜬 눈으로 지옥으로 뛰어드는 일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요? 찔레와 가시덤불이 타오르는 불길과 싸우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고도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Joseph Alleine, “An Alarm To The Unconverted”)
저는 조셉 얼라인 목사님의 말씀이 늘 마음속에 머뭅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이 크신 사랑의 예수님께서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라고 하시며 이토록 강하게 경고하시는데, ‘열매를 맺으면 좋지만, 안 해도 구원과는 상관 없어! 믿음으로 천국에 가지, 행위로 구원 받지 않아!’라고 반응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참된 믿음과 행위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진짜로 영접했다면,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되며, ‘열매 자체’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괜찮아’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죄와 하나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과, 죄를 완전히 포기했으나 실수하여 넘어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믿음입니다. 열심히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나 부족한 것과, ‘믿음으로 구원받으니 괜찮아’하여 순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구별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지혜로운 종들은 주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결코 소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신학사에서도 중요한 신학자이며 많은 명설교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리차드 벡스터’ 목사님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종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연말 정산을 할 때 ‘저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만족스러운 대답이나 설명으로 받아들여 칭찬이나 상을 베풀 주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전보다 더 훌륭한 주인을 만났다면 전보다 더 열심히 주인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죄를 사랑하며 죄의 종노릇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일에 열심이었던 것보다 영원한 구원으로 가는 일에 더 열심을 품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정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것을 구하기 보다 천국의 것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Richard Baxter, “A Christian Directory”)
리차드 벡스터 목사님의 말씀대로 종을 데리고 있으면서 종에게 아무 일도 맡기지 않는 주인은 없습니다. 만일 내가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그것을 땅에 묻어놓고 “주님은 아무 수고도 하지 않으시고, 남이 심고 뿌려 놓은 것을 거둬들이는 지독한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저는 주님께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을 나에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 25:26)라고 책망하실 겁니다.
열매 맺는 삶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리고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열매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외적인 ‘업적’과 ‘성과’를 열매로 여깁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외적인 업적과 성과를 열매로 여깁니다. 화려한 교회를 세우거나, 모두가 칭찬하는 큰 행사를 치룬 것을 열매로 여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도 그렇게 판단하실까요?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억울함, 비참함, 상실감, 외로움 등을 감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마귀가 이렇게 비웃으며 속삭입니다. “그것 봐라. 말씀대로 순종하니, 얻는 것은 없고 오히려 초라해지고 외롭게 되지 않았느냐!”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정말 초라해지고 외롭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도 그렇게 판단하실까요?
예수님은 크고 부요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너를 토하여 버릴 것이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는 반대로, 예수님으로부터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가 두 교회가 있습니다.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은 교회가 아니라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는 바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고난과 가난을 잘 안다. 그러나 너는 절대로 가난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너는 부요하다”(계 2:8이하). 이렇게 칭찬하신 이유는 그들의 ‘오래 참음’과 ‘충성’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가난한 교회였으며,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은 이유는 끝까지 말씀을 지키며 ‘인내’하고 ‘충성’했기 때문입니다(계 3:7 이하).
업적이나 성과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아무런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자랑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대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새 해’, ‘새 생명’, ‘새 기회’를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새 날과 새 생명과 새 기회를 주신 이유는 선교지에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라고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2025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보내시는 선교사’가 되시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2025년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으세요 !
ㅡ 음성편지 찬양: "나를 통하여"
(리브가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ej0EopA-PTU)
케이프 브레튼 섬에서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에스카소니 선교,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고, 현재는 에스카소니 & 폴롯엣 보호구역 원주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 제목 나눕니다
1. 사역지 이동
이곳에서의 사역을 정리하고, 캐나다 서부로 이동하여 Love Corps와 함께 원주민 사역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과정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Love Corps를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북미 원주민 선교회 "Love Corps"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Love Corps는 다음과 같은 선교회입니다.
3. 원주민들과 함께 전도도서 만들기
원주민들과 만드는 전도도서가 은혜 가운데 잘 만들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또한 그 전도도서로 인하여 영생의 복음이 많은 원주민들에게 전파되도록 기도해주세요.
4. 교회가 세워지도록
서부 원주민 마을에 다음과 같은 교회가 세워지길 원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목회 사역 : 예배, 성경공부 및 제자양육, 부흥회 및 여러 집회.
구제 사역 : 음식 선교, 원주민 어린이 지원, 미용 선교.
문화 사역 : 원주민 아이들과 전도 도서 출판하기, 복음적인 카드 & 엽서 만들기, 복음적인 연극 및 찬양 공연.
체육 사역 : 힙합 워쉽 댄스, 태권도 선교.
예술 사역 : 복음적인 그림 & 조각 전시회.
선교팀들이 머물 공간
현재까지 건축 헌금이 총 C$ 35,226.90 모금되었습니다. 교회가 서도록 선교비로 함께 동참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5. 사역자를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사역자
성령 충만하여 늘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발견하고, 내 고집을 꺾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지혜 충만한 사역자
허락하신 영역 안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할지라도, 이왕이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곳에서,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모든 사역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저의 무지와 부족함이 장애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사랑 충만한 사역자
제가 20살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했으니, 평신도로 산 시절보다 사역자로 산 시절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대형 교회, 다양한 사역, 다양한 선배 목사님들과 사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그리운 선배 목사님은 말을 잘하거나, 능력이 있거나, 정치적이거나, 인기가 많았던 목사님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이 많았던 목사님이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 제가 섬기는 선교지의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기보다, 사랑이 많은 목회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가 늘 사랑 충만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6. 사역자의 건강을 위하여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와 저의 아들 이다윗의 건강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저의 귀와 목의 건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7. 이곳 백인들을 위하여
이곳 백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 ’ “ ”
이곳은 90%가 ‘로마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그곳에도 가톨릭 백인 신자들이 있는데 왜 한국인들이 거기서 선교해야 하나요?”
이곳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 부처, 독수리, 무엇을 섬기든 착하게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보라,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가 얼마나 관대한가!”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모여서 특별 예배를 드린 경우도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이곳 가톨릭 신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는 다릅니다. (혹시 잘 모르시는 분은 아래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백인 선교에 뜻이 있으신 분들이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셔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은 다릅니다 !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은 완전히 다릅니다!
로마 가톨릭은 ‘큰 집’ 개신교는 ‘작은 집’, 또는 로마 가톨릭은 ‘아버지’, 개신교는 ‘아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종교개혁하여 나왔는데, 로마 가톨릭이 지금 면죄부를 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왜 로마 가톨릭이 이단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회와 전혀 다릅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거대한 ‘혼합 종교’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에도 없는 교리들을 정말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개신교회에는 없으나 로마 가톨릭에는 옳다고 믿는 교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75년, 천사와 죽은 자들을 숭배하기 시작. (성자에게 기도하라는 가톨릭의 가르침)
431, 마리아에 대한 예배와 하나님의 어머니(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부 성자 성령의 어머니라는 주장)라는 교리를 제정.
593, 그레고리 1세가 성경에도 있지 않는 연옥 교리를 만듦.
750, 성경을 교회가 인준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폐할 수도 있고, 더할 수도 있다고 주장. 성경 아래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경 위에 있다고 주장.
788, 십자가와 초상과 성자 유골 숭배 시작 (성자의 유골 및 유품들을 숭배하고 거기에 기도하면 기도가 응답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교리)
800, 마리아와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침.
850, 소금물을 뿌리는 이교도 종교 의식을 도입.
850, 교회 레오 4세가 산타 스칼라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죄가 사하여 지는 의식을 시작. 이 의식은 종교개혁 때까지 계속됨.
890, 성 요셉 숭배 시작.
1079,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성직자의 독신을 규정.
1090, 브라만교와 불교의 기도법인 묵주기도(로사리오)를 도입.
1215, 화체설 제정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축사 후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 - 당시에는 정말 그렇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 지금은 의미를 강하게 부여한 것으로 의미를 흐림)
1215, 성직자가 죄를 사하여 주는 고해성사 교리 제정.
1229, 성경과 진리를 알게 하는 여러 책들의 금령을 선포. 성경이 금서 1호가 됨.
1414, 성직자와 성도의 차별을 두기 위해 성도들에게는 성례식에서 떡만 허락하고 포도주를 금함.
1439, 연옥 교리 재정립.
1445, 교황은 실수가 없고 완전하며(교황 무오설) 교황이 선포한 말은 성경과 같음을 선언. 그러나 이미 교회가 성경 위에 있기 때문에(750년, 성경을 교회가 인준했기 때문에 교회가 성경 위에 있다는 교리) 결론적으로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위에 있게 됨.
1546, 트렌트 회의에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킴.
1854,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마리아는 원죄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고 주장)을 새로 만듦.
1870, 교황 피우스 9세가 교황 무오설(교황은 실수가 없고 완전하다는 주장) 재정립.
1917,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옳고 효과적이라는 주장)라는 교리를 새로 만듦.
1931,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는 431년에 만든 교리 재정립.
1950, 마리아 몽소승천설(마리아가 부활 승천하였다는) 교리를 새로 만듦.
1951, 마리아 몽소승천설 재정립.
1962, 마리아가 종신처녀로 지냈다고 주장. 예수님의 형제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은 이복형제들이라고 주장. 이를 위하여 “마리아 원복음서”를 만듦.
1962, 십계명의 제 2계명인 우상 숭배 금지 계명을 없애고,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
1962,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천국에 간다”고 선언.
1996,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선포.
2014.08.07. 바타칸(로마 가톨릭)이 대변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재림은 현재에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다. 당시에 예수님이 포도주에 취해서 말실수하셨다. 하지만 어떠한 소식에도 관계없이 신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계속 지켜나간다”라고 공식적으로 선포.
개신교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가톨릭 교회가 성경 위에 있으므로 성경을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고 믿고, 또 여러 우상숭배 사상들을 흡수하며 참된 교회의 모습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한 예로, 바벨론 종교에는 ‘밀리타 여신’을 숭배하며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일을 담당하는 여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이 바벨론 종교를 흡수하며 생긴 것이 바로 ‘마리아 신격화’(여신 숭배)와 ‘수녀 제도’입니다. 그 외에도 로마 가톨릭은 바벨론 및 각종 종교들을 흡수하며 거대한 혼합 종교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곳 폴롯엑과 에스카소니 원주민들 중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인 원주민들은 ‘카테리 테카퀴타’(Kateri Tekakwitha / 원주민 성녀)에게 기도합니다. “카테리 테카퀴타여!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유는 로마 가톨릭의 성자성녀 숭배사상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원래 기도란 엎드려 절하며 간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개신교는 마리아 또는 어떠한 성자들에게도 엎드려 절하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위에 있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습니다.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 아래 타종교들을 두기 위해 이교도들의 믿음을 흡수하며 변질된 복음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너무나 많지만, 무엇보다도 개신교는 “오직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에는 구원이 없다”(행 4:12)고 믿습니다. 로마 가톨릭처럼 “부처이든, 바알신이든 아무 신이나 섬겨도 상관없다. 그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만 살면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믿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믿음’과 ‘로마 가톨릭의 믿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