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Breton Island 에서 드리는
이달의 편지
케이프 브레튼 선교지에서 드리는
12월의 편지
감사하지 않는 원주민, 감사하는 원주민
얼마 전에 원주민 J가 저에게 심하게 짜증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에게 헌금 좀 해!
나에게 돈을 주고, 하나님에게 받아. 하나님에게 헌금 좀 하라구!”
J는 늘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원주민 중에 한 명입니다. 물론 빌려줘도 절대로 갚지는 않습니다. J는 늘 어린 아들을 핑계로 저에게 돈을 부탁했고, 저는 늘 ‘구제비’라는 마음으로 J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저는 ‘J와 나의 이런 관계는 결코 유익한 관계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이제 정말 급한 일 외에는 J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몇 칠 전에 J가 저에게 와서 또 돈을 부탁했습니다. 마치 돈을 주면 마약을 살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정중하게 그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J는 “아들이 먹을 것이 없어요”하며 계속해서 돈을 요구했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계속 거부하자 J가 심하게 짜증을 내며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나에게 돈을 주고, 하나님에게 받아! 하나님에게 헌금 좀 하라구!"
이 말을 듣고, 저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베풀었는데, J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몹시 불편해지고 어두워졌습니다. 한편 ‘정말 J의 아들에게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하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J의 집에 돈 대신 음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J가 감사하게 받지는 않았습니다.
J의 말이 몇 칠 동안 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J가 던진 말 속에서 J의 마음이 느껴져서 저의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 선교도 몹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이 일이 있고 며칠 후에, 원주민 메리안이 뜬금없이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데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그동안 당신이 우리 부족을 도와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감사한다는 메리안의 말에 저의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낙심했던 마음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곳 원주민들 중에는 “예수”와 “그리스도인”이란 단어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학살과 학대를 당한 가슴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겠지만, 원주민들이 ‘진짜 그리스도인들’과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여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 눈에는 모두 ‘우리를 학살하고 학대하며, 입으로는 예수를 외쳤던 사람들'로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마음속으로 ‘만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원주민들의 깊은 상처와 오해가 풀리면, 그것만으로도 내 할 일은 다한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메리안으로부터 감사의 메시지를 받고서 ‘적어도 메리안에게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오해가 풀렸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을 위하여 나를 사용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감사는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만듭니다. 우리의 감사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사람인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푸념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어휴, 제발 교회에서 감사하라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왜 안 하겠습니까?”
교회 복도에서 한 집사님과 중학생 아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사절 아침에 아들이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 뭐 감사해?” 그러자 집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음~ 딱히 감사할 건 없는데, 그냥 절기니까 감사주일로 지키는 거야.”
슬프지만 목회를 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믿지만, 받은 복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라는 말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받은 복은 별로 없을까요?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삭개오는 열등감, 불만, 돈욕심으로 가득찼던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남들로부터 무시 안 당해’,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어’, ‘나의 유일한 희망은 돈이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삭개오는 자기를 만나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우리 중에 삭개오와 같은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삭개오와 똑같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삭개오처럼 예수님께 감사하며 사시나요?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들의 형편입니다. 솔직히 목사인 저도 감사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10명의 나병환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10명 모두 고침을 받았지만, 사마리아 사람 1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저 9명은 정말 죄인들 중에 죄인들이다. 어떻게 저렇게 감사함을 모를 수 있지?’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끔씩 감사를 잊고 사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 9명 중에 하나가 나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광야 길에서도 감사
하나님은 이 땅에 ‘천국’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들이 완전하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어려운 일을 겪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천국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광야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가르칩니다. 광야 길을 걸으면서 어떻게 꽃 길만 걷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꽃 길’보다 ‘험한 길’을 걸을 때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할 이유는 광야 길을 걷는 내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을 걷는 내내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 끝에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행복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을 해도 어렵고 힘든 일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선교를 해도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을 경험할 때가 더 많습니다. 2023년 한 해도 그렇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힘든 순간에도 제가 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벌써 2023년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늘 ‘인생의 마지막 때’를 묵상하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는 오만가지 감정이 아니라 딱 한 가지 감정만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많은 일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고, 오직 “예수님 감사합니다!”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천국 문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2023년 마지막 달도 감사로 충만한 달이 되길 소망합니다. 보내시는 선교사가 되시는 여러분들도 감사로 충만한 달이 되시길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ㅡ 음성편지 찬양: "지금까지 지내온 것" (유튜브, HisKingdom)
케이프 브레튼 섬에서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에스카소니 선교,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고, 현재는 에스카소니 & 폴롯엣 보호구역 원주민들과 케이프브레튼 한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 제목 나눕니다
1. 선교의 문이 더 활짝 열리도록
원주민 선교의 문이 더 활짝 열리도록, 더 열심히 주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2. Love Corps를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제가 러브코(Love Corps) 선교회 소속이면서도, 그동안 러브코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러브코는 다음과 같은 선교회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교회가 세워지도록
다음과 같은 사역을 이루어 갈 교회가 세워지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목회 사역 : 예배, 성경공부 및 제자양육, 부흥회 및 여러 집회.
구제 사역 : 음식 선교, 원주민 어린이 지원, 미용 선교.
문화 사역 : 원주민 아이들과 전도 도서 출판하기, 복음적인 카드 & 엽서 만들기, 복음적인 연극 및 찬양 공연.
체육 사역 : 힙합 워쉽 댄스, 태권도 선교.
예술 사역 : 복음적인 그림 & 조각 전시회.
선교팀들이 머물 공간
2023년 9월까지 건축 헌금이 총 C$ 33,302.42(총예산C$ 500,000.00 중) 모금되었습니다. 교회가 서도록 선교비로 함께 동참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4. 원주민들과 사역자의 관계를위하여
특별히 원주민들과 저의 관계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더 사랑하고, 더 신뢰하고, 더 의지하고, 더 함께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5. 사역자를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사역자
성령 충만하여 늘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발견하고, 내 고집을 꺾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지혜 충만한 사역자
허락하신 영역 안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할지라도, 이왕이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곳에서,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모든 사역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저의 무지와 부족함이 장애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사랑 충만한 사역자
제가 20살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했으니, 평신도로 산 시절보다 사역자로 산 시절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대형 교회, 다양한 사역, 다양한 선배 목사님들과 사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그리운 선배 목사님은 말을 잘하거나, 능력이 있거나, 정치적이거나, 인기가 많았던 목사님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이 많았던 목사님이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 제가 섬기는 선교지의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기보다, 사랑이 많은 목회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가 늘 사랑 충만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6. 사역자의 건강을 위하여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와 저의 아들 이다윗의 건강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저의 귀와 목의 건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7. 더불어 이곳 백인들을 위하여
가끔 “그곳 원주민 선교는 그곳 백인들이 감당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곳 백인 마을은 대부분이 무교입니다. 이 중 종교 생활을 하는 백인들은 로마 가톨릭 신자가 99%입니다. 예전에 이들은 자주 다원주의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많은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예배를 드리며, “불교이든 힌두교이든 모든 신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들을 보라. 우리가 얼마나 관대하고 아름다운가!”라고 고백하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을 개신교의 큰 집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완전히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거대한 혼합 종교입니다. ( 왜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닌지, 왜 로마 가톨릭이 거대한 “혼합 종교”인지 하단 내용 참조 )
이곳 백인 선교에 비전이 있으신 분이 오셔서 함께 사역하셔도 좋겠습니다. 이곳 많은 백인들이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은 완전히 다릅니다 ! ”
로마 가톨릭은 ‘큰 집’ 개신교는 ‘작은 집’, 또는 로마 가톨릭은 ‘아버지’, 개신교는 ‘아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종교개혁하여 나왔는데, 로마 가톨릭이 지금 면죄부를 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왜 로마 가톨릭이 이단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회와 전혀 다릅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거대한 ‘혼합 종교’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에도 없는 교리들을 정말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개신교회에는 없으나 로마 가톨릭에는 옳다고 믿는 교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75년, 천사와 죽은 자들을 숭배하기 시작. (성자에게 기도하라는 가톨릭의 가르침)
431, 마리아에 대한 예배와 하나님의 어머니(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부 성자 성령의 어머니라는 주장)라는 교리를 제정.
593, 그레고리 1세가 성경에도 있지 않는 연옥 교리를 만듦.
709,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추는 이교도 종교 문화를 교황 신성시에 접목시킴.
750, 성경을 교회가 인준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폐할 수도 있고, 더할 수도 있다고 주장. 성경 아래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경 위에 있다고 주장.
788, 십자가와 초상과 성자 유골 숭배 시작 (성자의 유골 및 유품들을 숭배하고 거기에 기도하면 기도가 응답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교리)
800, 마리아와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침.
850, 소금물을 뿌리는 이교도 종교 의식을 도입.
850, 교회 레오 4세가 산타 스칼라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죄가 사하여 지는 의식을 시작. 이 의식은 종교개혁 때까지 계속됨.
890, 성 요셉 숭배 시작.
1079,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성직자의 독신을 규정.
1090, 브라만교와 불교의 기도법인 묵주기도(로사리오)를 도입.
1215, 화체설 제정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축사 후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 - 당시에는 정말 그렇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 지금은 의미를 강하게 부여한 것으로 의미를 흐림)
1215, 성직자가 죄를 사하여 주는 고해성사 교리 제정.
1229, 성경과 진리를 알게 하는 여러 책들의 금령을 선포. 성경이 금서 1호가 됨.
1414, 성직자와 성도의 차별을 두기 위해 성도들에게는 성례식에서 떡만 허락하고 포도주를 금함.
1439, 연옥 교리 재정립.
1445, 교황은 실수가 없고 완전하며(교황 무오설) 교황이 선포한 말은 성경과 같음을 선언. 그러나 이미 교회가 성경 위에 있기 때문에(750년, 성경을 교회가 인준했기 때문에 교회가 성경 위에 있다는 교리) 결론적으로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위에 있게 됨.
1546, 트렌트 회의에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킴.
1854,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마리아는 원죄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고 주장)을 새로 만듦.
1870, 교황 피우스 9세가 교황 무오설(교황은 실수가 없고 완전하다는 주장) 재정립.
1917,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옳고 효과적이라는 주장)라는 교리를 새로 만듦.
1931,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라는 431년에 만든 교리 재정립.
1950, 마리아 몽소승천설(마리아가 부활 승천하였다는) 교리를 새로 만듦.
1951, 마리아 몽소승천설 재정립.
1962, 마리아가 종신처녀로 지냈다고 주장. 예수님의 형제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은 이복형제들이라고 주장. 이를 위하여 “마리아 원복음서”를 만듦.
1962, 십계명의 제 2계명인 우상 숭배 금지 계명을 없애고,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
1962,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천국에 간다”고 선언.
1996,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선포.
2014.08.07. 바타칸(로마 가톨릭)이 대변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재림은 현재에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다. 당시에 예수님이 포도주에 취해서 말실수하셨다. 하지만 어떠한 소식에도 관계없이 신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계속 지켜나간다”라고 공식적으로 선포.
개신교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가톨릭 교회가 성경 위에 있으므로 성경을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고 믿고, 또 여러 우상숭배 사상들을 흡수하며 참된 교회의 모습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한 예로, 바벨론 종교에는 ‘밀리타 여신’을 숭배하며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일을 담당하는 여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이 바벨론 종교를 흡수하며 생긴 것이 바로 ‘마리아 신격화’(여신 숭배)와 ‘수녀 제도’입니다. 그 외에도 로마 가톨릭은 바벨론 및 각종 종교들을 흡수하며 거대한 혼합 종교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곳 폴롯엑과 에스카소니 원주민들 중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인 원주민들은 ‘카테리 테카퀴타’(Kateri Tekakwitha / 원주민 성녀)에게 기도합니다. “카테리 테카퀴타여!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유는 로마 가톨릭의 성자성녀 숭배사상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원래 기도란 엎드려 절하며 간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개신교는 마리아에게(또는 성자들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위에 있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습니다.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 아래 타종교들을 두기 위해 이교도들의 믿음을 흡수하며 변질된 복음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너무나 많지만, 무엇보다도 개신교는 “오직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에는 구원이 없다”(행 4:12)고 믿습니다. 로마 가톨릭처럼 “부처이든, 바알신이든 아무 신이나 섬겨도 상관없다. 그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만 살면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믿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믿음’과 ‘로마 가톨릭의 믿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
“” ‘’